[기자수첩] [특별기획 기자가 만난 사람]'불멸의 천재 시인' 오선장이계향 6자 이름의 시인(약칭 悟仙丈)

삼가 별이 뜨는 산에서 치유시선 悟仙丈 의 늦깍이 시인의 삶

기사작성 : 2021.04.19 (월) 12:06:57 최종편집 : 2021.04.21 (수) 12: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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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시인 오선장이계향 KRI한국기록원 공식인증서 전달식 모습/사진=오선장이계향 제공

 

(전국=영남언론기자단협회)이솜결 기자=오선장이계향 6자 이름의 시인(약칭 悟仙丈)은 2019년 10월 가을에 20일 여정으로 네팔의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를 등정하고, 5,550고지의 칼라파타르까지 등정하고 귀국했다. 


여류시인으로 63세의 늦은 나이로 대작업 후 너무 고통스럽고 아파서 어차피 죽을 거면, 지구에 가장 높다는 에벨레스트는 보고 가야지 하는 맘으로, 생사 마저 비우고 오른 길이라, 등반하다가 힘들면 거기서 멈추려 맘 먹고 오른 산행이었는데 결국은 초인적인 힘까지 다 써서 일행들도 못오른 베이스 캠프와 5,550고지 칼라파타르를 기어이 올라 한없는 기쁨과 희망과 행복으로 눈앞에 펼쳐진 선경을 보며 흐르는 눈물을 감추지 않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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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를 등정하고, 5,550고지의 칼라파타르 등정 후 모습

 

悟仙丈 시인은 "2018년 1월 10일 한국기록원에 국내 최고기록인  "최단기간 최다시작" 및 시집 출판을 인정하여 인정서를 수여합니다" 한국기록원에 등재까지 마치고 대작업 105권의 시집 출판을 다 마치고서 코에 피냄새가 나서 죽을 것 같은 고비를 3년여 힘겹게 회복에 힘쓰고 있던 때였기에 자신의 힘듦과 절망을 이긴 승리라고 말했다.


그녀가 詩란 것을 짓기 시작하고 시인이 된 것은 아주 우연한 기회라 홀로 딸을 공부시키며 사회 봉사활동을 많이 하던 그녀에게 여고를 졸업한 딸이 " 어머니 이젠 어머니께서 좋아하시는 글을 쓰셔요, 제 걱정은 마시구요, 어머니 글 쓰시는 모습이 참 아름다워요" 딸이 네이버에 블로그란 걸 그날 만들어 주면서 이젠 고생하신 어머니를 위로한다고 선물한 것이 53년간의 긴 침묵을 깨고, 시가 아니 시같은 것들이 마치 폭포수처럼 두두둑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부터 시를 쓴다는 것이 아니라, 시가 그녀를 잡고 놓아주지 않은 세월이 그날부터 약 4년에 걸쳐 일만이천수의 시를 쏟아낸 것이다.


직업도 잊고 터져 나오는 시를 받느라 외면도 하고 고통도 하소연 했건만 순간 시를 적어내지 않으면 다 사라지기에 너무 아까워서 맘을 바꾸고 받아 들였다고 했다.


등단하라고 수많은 문협에서 찾아왔지만 "시도 아니고 시인도 아닙니다, 그냥 좋아서 짓는 자유인이고 싶습니다" 고 했다


그리고  몇년을 권유하길래 등단을 하고 시집을 내고 한국문인협회 등록을 하는데, 이계향 이란 수필가가 있어서 다른 이름으로 등록을 하라고 해서 참 기막힌 사연도 많다 싶어 미루다, 결국 선호인 오선장으로 등록을 마치고 悟仙丈으로 활동을 했는데, 몇년전 그 수필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6자 이름 오선장이계향 으로 등록된 서러운 사연도 있어 이름자 지어주신 아버님께 겨우 효를 한 것 같다고 했다.


"사랑의 그리움 그대는 아는가" 처녀시집을 출판하고 다시는 시집을 안 내겠다는 시인에게 문학박사 유박사께서 12,000수를 그냥 블로그에 두면 다 남의 것이 되어 자식을 낳아 기르지 않으면 남의 자식되는 것과 같다고 끊임없는 권유를 해서 몇달 생각하다 그 말도 맞는 것 같아 작시들에게 미안해서 12,000수를 시집에 담는 대작업에 돌입하여 드디어 15개월 소요후 105번째 시집까지 출판된 사연이다.


그런데 처녀시집을 출판하려고 표지를 구상하려 교보문고 광화문점에 가보니, 시집 표지들이 다 특색이 있어 아무리 봐도 빨간색만 없는 것같아, 첫 시집 표지를 빨간색으로 한게 우연이지 필연인지 두번째 표지를 구상하다, 영덕 고향 계신 부모님께 인사 차 다녀오는 버스 속에서, 시인이 태어난 산이 칠보산 정기라 잘 모르고 첫 표지를 한 것인줄 알았는데 무지개빛 칠보산의 정기가 시인을 부른 것 같아 너무 흥분되었고, 그후 부터는 빨, 주, 노, 초, 파, 남, 보 일곱빛깔 무지개 시집이 15쌍으로 105권이 탄생된 신기한 일이었다.


15개월간 출판비, 시간, 매일 직접 손수 시를 교정하는 105권 작업은 너무도 고통스럽기까지 했으니 문득 생각난 것이 산으로 한달에 한번씩 정기를 받아 보고 싶은 맘이 들어서 15개월간 한달에 출판 후 15곳의 명산을 찾아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시는 시인의 자식이라 맑고 밝은 에너지를 담아서 시집 보내고 싶은 마음에 가파른 절벽도 힘들지 않고 어느 듯 적응해 가면서 마치 하늘의 소리 담아 세상에 내놓는 사명감도 들었다.


105권 출판 후 이 기록은 아무나 깰 수 있는 기록은 아닐거라는 생각이 들어 한국기네스를 찾았으나 폐쇄되고, 새로운 한국기록원이 있어 그곳에 이 기록을 인정받고 싶어 신청해서 결국 인정서를 받은 것이다.


시인은 술을 한잔도 하지 않아 오직 산으로 가서 맑은 공기 밝은 하늘 보는 것이 유일한 낙이라 무지개빛 시집은 비온 뒤 맑은 하늘처럼 맑고 밝은 기운이 깃든 시들이라고 했다.


출판사 사장님이 105권 출판 후 암으로 돌아가셔서 교보에 있는 책들이 작가인 시인에게 돌아와 있다고 한다.


너무도 많은 큰 일들이 한꺼번에 마치 벼락처럼 그렇게, 정신도 없이 흘러보내고 나니, 아픈 시간들이 찾아오고 아직도 회복중입니다고 했다.


시인을 그렇게 말합니다, "누군가를 위하여 지어 놓은 일만이천수가 누군가의 영혼에 무지개빛처럼 환하게 밝혀주리라는"


한국기록원측 말로는 월드 기네스에 신청하면 경비가 많이 들것이라 하여, 우선 몸부터 좀 추스리고나서 어차피 이 기록은 세계적인 기록일거라, 왜나햐면 선도수련가인 일생 수련한 시인도 코에 피냄새가 나서 요절할 것 같았는데, 아마 오랜 세월 지나 이 기록을 누가 깰지는 모르겠지만 죽음같은 고통을 준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인의 아버지는 사립중학교 교장 선생님이 셔서, 시인은 어릴적부터 책 읽기를 좋아해 학교 도서관의 책을 못읽는 책 외는 다 볼만큼 엄청난 독서를 한 것이, 저변에 깔렸으리라는 그리고 더하여 한국의 開天이 오선장 시인을 통해 무엇인가 전달할 것이 있을 거라는 새로운 장을 여는 주춧돌의 역할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고 하였다.


한국기록원 유튜브 인터뷰에서 처럼 가장 높은, 가장 낮은, 극과 극의 시. 공을 체험하게 하신 하늘에 감사드리며, 지인들의 많은 관심과 사랑에도 감사의 고개를 숙인다며 겸손을 나타냈다.


경북은 나의 고향이고, 영덕은 나의 탄생지이며, 그곳엔 고려 왕사셨던 나옹대선사님 출생지이기도, 목은 이색의 외가집이기도, 영해 박씨의 출발점이기도 한 멋지고 아름다운 곳입니다.


앞으로의 꿈은,  경북이 부른다면 여고적 걸스카웃 단장을 지낸 인연으로 경북을 부흥하는데 돕고 싶으며, 영덕이 부른다면 고향의 정감 넘치는 새로운 시대를 여는 일에 시로써 함께 하고 싶다는 뜻을 말했다.


또한, 오선장 시인은 경주이씨 중앙회로 부터 효녀상을 받은 효녀시인이기도 하다.

 

[협회 이솜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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